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 앙투아네트 (문단 편집) === 외모 === 얼굴은 '예쁘장하다'고 할 수 있었다. 일단 처녀 때 미인으로 전 [[유럽]]에 많은 남자들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던 어머니 [[마리아 테레지아]]의 외모를 '조금' 물려 받기도 했다. [[하얀 피부|특히 피부가 아주 이뻤다고 한다.]] [[천연두]]로 인한 곰보, 여드름, 화장품, 돼지고기 같은 육고기, [[초콜릿]], 튀김 같은 살찌는 음식을 많이 먹고, 향신료 가득한 음식들의 부작용으로 인한 트러블로 피부가 까맣고 지저분했던 유럽의 귀족들에게도 그녀의 흠 적은 피부[* 완전히 결점 없는 피부는 아니었고, 뺨에 아주 희미한 곰보 자국이 있었다고. 하지만 당시 이 정도의 흠은 흠이라고 할 수 없었다.]는 칭찬의 대상이었다. 당시 [[유럽]]에서도 피부 미인은 좋은 대접을 받았다. 가슴 사이즈 크기 둘레가 자그마치 109cm 이상이나 되었다고 한다.[* 최소 [[폭유|G컵에서 H컵~ M컵]]에 달하니 매우 크다.] 단순히 큰 것뿐만이 아니라 귀부인들끼리 경쟁한 '가장 섹시하고 큰 젖가슴 콘테스트'(...)에서 당당하게 1등을 했다. [[파일:Marie-Antoinette Gruppe_q80.jpg]] 실제로, 19세기 경부터 프랑스에 유행했던 아래로 동그라면서도 깊이는 얕은 형태의 <쿠페>(Coupe)라는 샴페인 잔은 그녀의 젖가슴 형태를 본 떠서 만든 샴페인잔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. 종합하자면 '베르사유의 장미'에 표현한 미녀까지는 아니었지만 소식하여 몸매도 늘씬한 편이어서[* 다만 출산 후엔 어느 정도 살이 붙었다. 그래도 당시 귀부인들에 비하면 날씬해 보이는 편이었다.], 가슴은 아름답고 매우 큰데 당시 유럽 기준으로 늘씬한 몸매와 백옥에 가까운 피부의 소유자에 패션 센스까지 좋은 당대 아이콘이 되기 충분하다라고 할 수 있다. [[마리아 테레지아|어머니]]가 [[프란츠 1세|다른 가문에서 온 아버지]]와 결혼한 덕분에[* [[마리아 테레지아]]와 프란츠 슈테판은 8촌이지만, 8촌부터는 남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근친결혼이라고 할 수는 없다.] 조상들보다는 주걱턱이 덜했지만 흔적은 약간 존재해 아랫 입술이 튀어나온 인상을 주었다. 삐뚤한 치아 때문에 시집 오기 전 [[치아교정]]을 하고 컴플렉스를 부채로 가리고 다녔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